오픈히스토리컬맵 (OHM) - 지명 표기는 한글인가 한자인가

오픈히스토리컬맵 (OHM) 유저로 활동하다 보면 역사지도라는 특성상 오픈스트리트맵과는 다른 문제에 직면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오픈스트리트맵 한국 커뮤니티 분들께서도 한번쯤 생각해보실 법한 흥미로운 주제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현재 오픈스트리트맵에서는 모든 지물은 한글로 표기되고 있지만, 오픈히스토리컬맵에서는 과거 지명에 대해 한자로만 써야 하는가, 한자를 병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한글만 써도 괜찮은가에 관한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이는 한글이 발명되기 이전의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지명이나, 공식적으로는 일본어로 표기해야 할 일제강점기의 지명이 특히 그렇습니다.

오픈히스토리컬맵에서 본 548년경의 한반도입니다. 백제, 신라, 가야의 국명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서라벌이나 탐라처럼 국한문 혼용이 된 것, 금관가야처럼 한글 단독 표기인 것도 있습니다.

당대의 기준 vs 현재의 기준

원칙대로라면 그 시대에 맞는 문자로 표기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이를테면 옛 이집트 문명의 도시 이름은 이집트 상형문자로 표기하여야 하겠고, 그렇다면 우리도 한글이 없던 시대나 일제강점기의 지명은 한자로 단독 표기하는 것이 원칙일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물의 기준이 당대라 하더라도 그 지도를 읽는 지금의 유저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반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1500년경의 이집트를 보면 상형문자가 아니라 영어 표기로 되어 있습니다. 상형문자가 제대로 지원되지 않고 깨져 나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고대 이집트 연구를 통한 지도 자료들이 서양권에서 많이 제작되었고 영문으로 표기한 것이 지배적이기 때문이겠죠. 이러한 시선에서 보면 시대와 관계없이 한반도의 역사적 지명은 한글 전용 표기가 우선되어야 하겠습니다.

한글 표기의 시작점은?

처음에는 한자를 쓴다고 가정하더라도, 어느 시점부터 한글로 표기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도 문제가 됩니다. OHM에서는 특정 시점에서 지명이 바뀌었음을 나타내려면 그 지명별로 요소를 따로 생성해서 start_date=* 태그에 날짜값을 입력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짜부터 한글 표기를 적용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정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지 못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글 자체는 1444년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였지만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한자가 주를 이뤘습니다. 한글 전용 신문인 독립신문은 1896년에 창간되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국한문혼용체가 굉장히 많이 쓰였고 신문에서는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한글 전용이 채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글 지명의 start_date 태그 입력값은 1444년일까요, 1896년일까요, 1945년일까요, 아니면 1990년대일까요?

마치며

현재 저는 1945년 광복 이전에는 한자와 한글을 병행 표기하고, 광복 이후에는 한글을 단독 표기하는 것으로 편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전에는 중국 쪽 유저분께서 과거 지명에 대해 한자 단독 표기설을 주장하셨고 이것을 반박하는 코멘트 토론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직 OHM의 한국 유저가 많이 없는 만큼 한글/한자 표기 문제에 관한 담론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OSM 유저 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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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재미있고 흥미로운 주제를 꺼내놓으신 것 같습니다.
평소 우리말글과 말글정책 등에도 관심을 가지던 터라 특히 흥미가 가는 주제입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OSM이나 OHM은 기여자들끼리 원칙을 정해 가는 얼개이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약속된 원칙에 따르’는 것이 첫째라고 봅니다.
하지만 미처 약속되지 않았거나 서로 충돌하는 경우라면 아래의 원칙에 바탕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입니다.
잠깐 덧붙이자면, 이것은 OSM이나 OHM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이름(땅이름)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평소 제 생각입니다.

우리말 발음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말’과 '글’을 놓고 보자면 '말’이 더 본바탕이라고 봅니다. 특히 우리 역사에서는 말과 글이 약간 다른 경우도 있는데, 이두나 우리식 한자 같은 경우입니다.
특히 '한자’라는 것은 흔히 중국 글자라고만 인식하는 경우도 있으나 (기원이 어디냐를 떠나서)중국 혹은 한족 만의 글자가 아니라 한자 문화권에서 널리 쓰이던 글자라고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식 한자가 있었고 베트남은 베트남식 한자가 있었으며 한자를 바탕으로 한 파생 글자들은 숱하게 많았습니다.(저는 지금은 우리 글자인 한글이 있으므로 한글 본위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한자를 우리 글자로 보지 않는 시각에는 반대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두나 향찰도 결국은 우리 글자입니다. 다만, 지금은 '한글’이라는 매우 훌륭한 수단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연구 값어치 이상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보는 쪽입니다.)
흔히 알다시피 한자에 모양을 더해서 巪(巨+기윽)이나 乫(加+기윽) 같은 경우는 중국 한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것을 한자만 적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 때문이라도 반드시 소리를 먼저 적고 필요에 따라 글자를 적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아주 옛 역사에 있어서도 그 때는 그 때의 소리값이 있지만 그것을 나중에 적게 되면서 한자를 빌어 적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또한 되도록 그 때의 소리값에 가깝게 적어주는 것이 올바르다고 봅니다.
다만 일제강점기 같은 경우에는 좀 다른 경우인 것이, 이 때는 글자를 빌려쓴 것이 아니라 완전히 나라를 빼앗겨서 나라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 당시 일본 발음과 글자를 기준으로 적어 주는 것이 OHM의 원칙에 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어 봅니다.(물론 이 때에도 나라가 바뀌었으므로 완전히 그 나라 소리값과 그 나라 글자를 쓸 것인지, 어찌 되었건 간에 현재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 나라 소리값은 따르되 우리 한글을 쓸 것인지 하는 논의의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위키백과의 경우에도 그 당시 태어난 사람의 경우에는 설령 우리 겨레 핏줄이라고 하더라도 태어난 곳에 따라 일본 국적이나 중국 국적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 또한 보기를 들어 말해 보자면, 지금 '독도’는 옛날에는 '돌섬’이라 불렀는데 사투리 소리값으로 '독섬’에 가까웠다고 하고 이것을 옮겨적는 과정에서 소리를 따러 한자-당시는 일본 한자-로 '독도’라고 적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물론 또다른 공식적인 이름으로 '우산도’니 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이름을 적자면 ‘돌섬’ 혹은 그 곳 사투리 소리값에 따라 '독섬’으로 적어주는 것이 올바르다고 봅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경우에는 그 당시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경우들이 있을텐데, 이럴 때에는 할 수 없이 요즘(혹은 비교적 당시에 가까운 때) 이름을 쓸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한글 적기를 언제부터 적용할 것인가

(옛 이름에는 그때의 글자를 기준으로 적는다는 전제 아래)한글 소리값을 언제부터 적용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OHM이 아주 옛날부터 있어 왔으면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겠으나 OHM 시작은 어차피 우리가 한글을 널리 쓰기 시작한 뒤입니다. 따라서 '소리값을 기준’으로 모든 경우에 한글을 쓰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광복 전후로 나누는 것에는 매우 동의를 합니다.
아울러 덧붙여서 그 이전은 '한글과 한자를 함께 적’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소리값을 고려해서)한글과 그 당시 글자를 함께 적’는 것으로 원칙을 잡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료가 남아있지 않은 아주 먼 역사에서 그렇게 적용할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어찌 되었건 간에 미처 한자 표기가 없다면 이두 표기 같은 것이 쓰였을 경우도 있을 것이며, 일제 강점기의 경우에는 일본 한자를 적는 쪽이 원칙에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정말 안타까운 역사이고 우리 말글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굳이 한자나 일본 글자를 고려할 필요가 있나 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OHM은 사실과 역사를 기록하는 매체이므로 마치 OSM에서 실효지배를 기준으로 땅을 가르고 이름을 적듯이 OHM에서도 비슷하게 적용을 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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