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OSM 편집을 하는가? : OSM의 철학에 대하여

기술적 정교함을 추구할 것인가, 공유하는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OSM에 이바지하고 있으신가요?
혹은 OSM에 이바지하시면서 무얼 바라시는 건가요?
OSM 편집에 참여한 계기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할 것 같습니다. 아무도 시켜서 한 게 아니라는 사실…
그 자발성이 OSM의 출발점이고, 동시에 OSM이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근간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의 양이 늘어나고 기여의 깊이가 깊어지면서 우리는 각자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태그 하나도 더 정확하게, 지물 하나라도 더 정밀하게…
그 집념이 OSM 데이터의 수준을 높여온 원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높아지다 보면 좀 더 높은 기준을 세우게 되고, 그 기준에서 한참 뒤떨어지는 편집이나 기여에는 실망이나 허탈, 혹은 가끔은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애써서 어렵게 구축해 놓은 데이터에 이런 엉터리 같은 편집이 끼어들다니…” 하면서 말입니다.
그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순간, 문제가 생깁니다.

누구도 초심자, 입문자에게 불친절하거나 배제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 의도 자체는 분명 선의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높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편집에 대해 감정을 개입시키는 순간 그것이 바로 초심자, 입문자에게 불친절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들을 배제하는 일이 됩니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한번 되돌아 봤으면 합니다.
그 누구도 처음에는 초보자였고 서투른 기여자였다는 사실을요…

어느 에서, OSM 체제를 아나키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아나키스럽’다고 하건 혹은 ‘탈권위’ 혹은 '탈중앙집권’이라 하건 간에 OSM 체계 안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독보적인 권력, 권위, 권한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혹 OSM의 철학과 관련하여 제가 이해한 바와 완전히 다르게 이해한 분이 있으면 그것을 설명해 주시면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장도 없고 심사위원도 없고 오래 했다고 계급장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위키에 적힌 합의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모아놓은 것이지 뛰어난 누군가 혹은 특별한 누군가가 선포한 법전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태그 중에는 합의없이 관행으로 굳어서 온 것도 있고 일부는 분명 합의를 했지만 지금은 여러가지 사정과 상황으로 인해 바뀌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합의와 관행은 분명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험이 많다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만큼 많이 알고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다른 기여자를 판정할 자격이 된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OSM 안에서 그런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적어도 제가 아는 한! ^^)
오히려 경험이 많은 사람, OSM에 이바지를 더 오래 한 사람이 더욱 너그럽고 품이 넓고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OSM의 모토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여 만들고, 제한 없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무료 지도”입니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 커뮤니티에 가입을 한 사람, 어떤 능력을 검증 받은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경력과 기술이 아무런 권위, 권능이 되지 못함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조는 때로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위계가 없고, 중심이 없고, 최종 결정권자가 없습니다.
질서와 위계와 권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 구조가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책임지는가?” 하는 물음이 떠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OSM은 여러 경로를 통해 논의와 합의를 통해 서로 조금씩 책임을 나눠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경력자, 능력자, 우수 기여자라고 해서 예외가 없습니다.
이것이 불안한 구조처럼 보여도 20년 가까이 작동해 온 철학이고 이념입니다. OSM 공동체를 존중한다는 것은 이 철학이 선뜻 이해되지 않거나 납득되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OSM과 같은 위키 체계에서 거의 모든 것을 논의하고 설득하고 합의해 가는 과정은 참으로 험난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OSM이 합의한 철학이고 지향하는 철학이라면 그것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편집할 수 있고, 누구나 다른 사람의 편집을 수정할 수 있고, 결국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모여서 방향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OSM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보자, 입문자의 편집과 기여가 미숙하더라도 그것이 OSM의 철학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고 악의적고 의도적인 훼손만 아니라면 언제나 그들을 선의를 가지고 존중하라고 “에티켓 가이드라인”에서 권장하고 있습니다. 또 의견이 다를 때에는 왜 다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설명하고 논의하고 또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나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하고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만들고 있는 건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OSM에 이바지하고 있는지를 한 번쯤 되물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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